스테이블코인, 사토시의 ‘전자 현금’ 자리 차지하나…비트코인은 사실상 탈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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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토시 나카모토가 2008년 비트코인(Bitcoin, BTC) 백서에서 제시한 “중개 없는 글로벌 전자 현금 시스템” 구상이 16년이 지난 지금, 현실에서는 엇갈린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일상 결제 무대의 중심에는 비트코인이 아닌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이 서고 있다는 평가가 힘을 얻는 모양새다.
비트코인, 결제보다 ‘디지털 금’에 가까워졌다
사토시가 구상한 비트코인의 초기 목표는 누구나 낮은 비용으로 소액을 주고받는 글로벌 결제 네트워크였다. 그러나 현재 시장에서 비트코인은 높은 변동성 탓에 실생활 결제 수단보다 가치 저장(SOV) 자산에 더 가깝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짧은 시간 안에 두 자릿수 가격 변동이 반복되면서 상점과 이용자 모두 비트코인을 가격 기준 통화로 삼기 어렵게 됐다. 일부 국가·지역에서 세금 납부나 상점 결제에 활용되지만, 사용 범위는 제한적이다.반면 달러 가치에 1:1로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은 가격 변동성이 미미해 “계산 단위·결제 수단” 역할에 더 적합한 디지털 화폐로 자리잡는 중이다. 2024년 기준 스테이블코인 시가총액은 약 2,100억 달러, 연간 거래 규모는 26조 1,000억 달러 수준으로 집계되며 이미 글로벌 결제 인프라의 한 축이 됐다.
규제의 무게추도 스테이블코인 쪽으로
법·제도 환경 역시 비트코인보다 스테이블코인에 더 호의적으로 기울고 있다. 미국에서는 암호화폐 시장 구조 법안(CLARITY) 을 통해 디지털 자산 거래·시장 구조 규칙을 정비하고,스테이블코인 규제법 지니어스(GENIUS) 를 통해 발행 요건, 준비금 구성, 공시·감사 의무 등을 명문화했다.유럽연합은 미카(MiCA) 를 통해 달러·유로 연동 스테이블코인을 대상으로 자본 요건, 발행 한도, 리스크 관리 기준을 단계적으로 도입하고 있다.미즈호의 애널리스트 댄 돌레브는 이 같은 움직임이 “스테이블코인 발행과 감독에 대해 거의 전통 금융상품 수준의 명확한 규칙을 부여했다”고 평가했다. 반면 비트코인은 국가별로 법적 분류와 적용 범위가 여전히 엇갈리며, 증권·상품·지불수단 사이에서 해석이 분산된 상태다.
양자컴퓨팅 리스크, ‘되감기’ 가능한 스테이블코인 vs. 비트코인
향후 잠재 리스크로 꼽히는 양자컴퓨팅 공격 가능성에서도 두 자산의 대응 방식은 다르다.대부분의 스테이블코인은 중앙 발행사가 존재해, 키 탈취나 스마트 계약 취약점 등 보안 사고 발생 시 문제 주소를 동결하거나,신규 토큰 재발행을 통해 일종의 ‘롤백’에 가까운 조치를 취할 수 있다.반면 비트코인은 완전 탈중앙 구조로 설계돼 있어, 프로토콜 차원에서 개별 주소를 동결하거나 되돌리는 수단이 사실상 없다. 양자컴퓨터가 현행 암호 알고리즘을 무력화하는 수준에 도달할 경우, 공개키가 노출된 지갑 대부분이 잠재적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꾸준히 제기된다.미국 정책 당국이 스테이블코인을 “달러 영향력 확대와 국채 수요 확보에 기여하는 도구” 로 보는 반면, 비트코인은 통화·재정 정책과 거리를 둔 독립 자산으로 취급하는 점도 양측에 대한 정책 태도를 갈라놓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카드 네트워크·서클, 디지털 결제 패권 경쟁 전면에
제도권 안으로 편입되는 스테이블코인 흐름 속에서 가장 큰 수혜 업종으로는 글로벌 카드 네트워크와 대형 발행사가 지목된다. 카드사 입장에서는 기존 결제망 위에 스테이블코인 정산 레이어를 얹는 방식으로 수수료 구조·정산 속도 개선을 동시에 노릴 수 있기 때문이다.발행사 중에서는 서클(Circle) 의 성장성이 특히 주목받고 있다. 달러 연동 토큰을 통해 국경 간 송금,기업 결제,디파이(DeFi) 인프라등을 동시에 겨냥하는 전략을 구축해, “스테이블코인판 글로벌 결제 인프라”에 가장 근접한 플레이어라는 평가도 나온다.다만 돌레브는 금리 인하 국면에서 준비금 운용 수익이 줄어들면 스테이블코인 비즈니스의 수익성이 압박을 받을 수 있다는 점, 발행사 간 경쟁 심화로 마진이 빠르게 낮아질 수 있다는 점을 잠재 리스크로 짚었다.
비트코인 결제 실험, ‘블록(Block)’이 시험대 오른다
한편 비트코인을 다시 결제 영역으로 끌어올리려는 정면 돌파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결제·핀테크 기업 블록(Block)은 비트코인을 자체 결제 인프라와 더 깊이 연결하는 전략을 추진 중이다. 돌레브는 이를 “비트코인을 순수 가치 저장 자산에서 실제 결제 자산으로 재포지셔닝하려는 중요한 실험”으로 평가했다.스테이블코인이 사토시가 꿈꾼 ‘일상 결제용 전자 화폐’ 역할을 상당 부분 선점한 가운데, 비트코인은 디지털 금·준준비자산 성격을 강화하는 길을 택할지, 기술·서비스 혁신을 통해 결제 트랙으로 되돌아올 수 있을지 향후 몇 년간이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