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블코인, 가치 연동 붕괴·범죄 악용에 ‘이중 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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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스테이블코인 시장이 최근 디페깅 사태와 자금세탁·납치 범죄와의 연계 정황이라는 ‘이중 악재’에 직면했다. 오는 20일 국회 정무위원회가 예정한 국정감사에서는 스테이블코인의 제도화 필요성과 감독 공백 문제가 핵심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디페깅은 신뢰의 균열
스테이블코인은 통상 달러 등 법정화폐와 ‘1:1 연동’을 목표로 설계된다. 하지만 최근 국내 거래소에서는 일부 달러 연동 토큰이 1달러 수준을 훨씬 넘어서는 가격이 나타나며 연동 붕괴(디페깅)가 현실화됐다.
예컨대, 한 국내 거래소에서 대표 달러 연동 코인인 Tether (USDT)의 시세가 1달러에 3.5배까지 치솟기도 했다. 이로 인해 고객 피해와 신뢰 하락 우려가 커졌다. 이 같은 사례는 국내 금융당국 및 거래소들로 하여금 “스테이블코인은 더 이상 ‘안전자산’으로만 볼 수 없다”는 인식을 확산시키고 있다. 한편 해외에선 미국이 올여름 제정한 GENIUS Act(Guiding and Establishing National Innovation for US Stablecoins Act)을 계기로 다른 국가들도 스테이블코인 규제체계 정비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미 관련 법안들이 국회에 제출되어 있는 상태다.
캄보디아 납치사건, 스테이블코인 송금·자금세탁의 정황
신뢰 붕괴 문제와 별개로, 스테이블코인이 자금세탁 및 국제 조직범죄 수단으로 활용된 정황이 최근 드러나면서 논의가 더욱 복잡해졌다. 19일 국회에 따르면, 캄보디아에서 한국인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납치·실종 사건이 발생했고, 범죄조직이 피해자 가족에게 디지털자산 송금을 요구하거나 국내 중개자를 통해 환전·전송한 정황이 파악됐다.
이들은 피해자의 송금을 스테이블코인으로 전환한 뒤 약 10 % 수수료를 떼고 현지로 송금하는 방식으로 운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법률가들은 국내 형법 적용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예컨대 국내에서 범죄행위를 한 외국인도 처벌 가능하며(형법 제2조), 한국인을 상대로 범죄를 저지른 외국인도 처벌대상이 된다는 입장이다.
즉, 스테이블코인이 범죄의 수단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도권에서도 커지고 있다.
제도공백이 감독망 허물어
현재 국내에서는 스테이블코인에 특화된 감독체계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사실상 스테이블코인은 다른 암호자산과 동일한 ‘가상자산’ 범주로 취급되며, 별도의 법률적 틀이나 감독기관이 명확하게 정해져 있지 않다. 금융당국 내부에서도 “먼저 은행 등 엄격히 규제되는 기관부터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허용하고 단계적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특히 문제로 지적되는 것은 다음과 같다. 개인 간(P2P) 형태의 스테이블코인 전송은 자금 흐름 추적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 익명성·탈중앙성 구조가 있어 범죄·탈세·불법 송금에 악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 예컨대 자본시장연구원 보고서는 개인 간 스테이블코인 전송은 거래 추적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자금세탁방지(AML) 체계와 외국환거래법(외환법) 체계가 스테이블코인의 특성에 맞춰 정비되어 있지 않다는 점.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기존의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과 외환법 개정을 통해 스테이블코인을 포함시키고 “고객확인(KYC) 및 거래정보 보고 의무 강화” 방향으로 제도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피해자의 자금이 중개자 계좌 → 코인으로 전환되는 구조가 발생할 경우 금융기관이 자금세탁을 즉시 감지하기 어렵다는 점도 법 개정 필요성으로 꼽힌다.
국정감사에서 집중될 쟁점
오는 20일 예정된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다음과 같은 쟁점이 집중될 전망이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유통에 대한 감독 공백과 이에 대한 금융당국(예: 금융위원회)의 준비 현황
디페깅 사태로 인한 사용자 피해 및 거래소 대응 현황
해외 범죄(납치·실종·사기)와 스테이블코인 송금 연결 정황 및 자금세탁 가능성
제정 또는 개정이 논의 중인 스테이블코인 관련 법률(디지털자산기본법, 가치안정형자산발행법 등)의 통과 시점 및 내용
외국발 스테이블코인(예: 달러 기반) 유입으로 인한 외환시장 및 금융안정 리스크
사용자 보호를 위한 상환권(issuers redemption) 제도 도입 여부 — 즉 발행자가 사용자에게 직접 상환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의 필요성
향후 방향과 남은 과제
국내 시장에서 스테이블코인이 안정적 결제수단 혹은 유틸리티 자산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과제가 남아 있다.
명확한 제도화: 스테이블코인을 일반 가상자산과 구분해 발행·유통·감독을 별도로 규정하는 법률이 시급하다. 국내에선 이미 여러 법안이 제출되어 있다.
발행요건 강화 및 투명성 확보: 예컨대 발행사는 일정 자본금 이상을 확보하고, 준비금 자산 구성 및 외부감사정보를 정기 공개해야 한다는 요구가 제기되어 있다.
사용자 보호 장치 구축: 보유자가 발행사에게 직접 원화 또는 법정화폐로 상환을 요청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해외 규제 사례에서도 이 부분이 강조되고 있다.
자금세탁·외환리스크 대응: 익명성이 높은 스테이블코인을 통한 자금 유출·탈세·불법 송금 가능성에 대응해 KYC·보고 의무·금융기관 모니터링 강화가 필수적이다.
시장 신뢰 회복: 디페깅 사례에서 보였듯이, 시장 참여자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발행사·유통사·거래소 모두 책임 있는 운영과 투명한 리스크 관리가 필요하다.
외국발 스테이블코인 유입 관리: 국내 시장에 유통되는 외국발 스테이블코인이 많을 경우 자본유출·환리스크가 증폭될 수 있어, 국내 법제 하에서의 적격성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
결론
스테이블코인은 본래 ‘가격이 안정된 디지털자산’이라는 특징으로 결제·송금·금융혁신 영역에서 주목 받아 왔다. 하지만 최근 국내에서는 **가치 연동 붕괴(디페깅)**와 해외 납치·자금세탁 연계 정황이라는 두 가지 리스크가 동시에 드러나면서 제도화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특히 오는 국정감사에서 스테이블코인의 감독공백과 법률 정비가 핵심 이슈로 다뤄질 예정인 만큼, 발행·유통업체는 물론 거래소·금융당국 모두 대비가 필요한 상황이다. 사용자 입장에서도 “발행사가 언제든지 원화·법정화폐로 상환해 줄 수 있는가?”, “내 송금이 범죄에 악용될 위험은 없는가?” 등의 의문이 생기는 만큼, 시장 신뢰 회복과 법·제도의 정비는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