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디지털자산 입법 더 늦어지면 안 된다”… 정부에 10일까지 법안 제출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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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자산기본법’ 놓고 국회·정부 긴장 고조
국회에서 디지털자산기본법 처리를 놓고 다시 한 번 속도전을 요구하고 나섰다. 더불어민주당 디지털자산 태스크포스(TF)는 정부에 이달 10일까지 정부안을 국회에 보내라고 촉구하며, 현재와 같은 입법 지연이 계속될 경우 한국이 디지털 금융·블록체인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들은 최근 국회의원회관에서 토론회를 열고, “더 이상 방향성만 이야기할 때가 아니라 실제 법안을 상정하고 심사해야 할 시점”이라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압박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논쟁, “위험보다 지연이 더 큰 리스크”
이번 논의의 중심에는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보고서에서 스테이블코인의 여러 위험 요소를 짚어냈지만, 국회 일각에서는 “위험을 관리할 제도를 만드는 것이지, 논의 자체를 늦추는 명분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시각이 힘을 얻고 있다.
여러 의원들은 다음과 같은 점을 우려하고 있다.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제도권 안에서 설계되지 못하면 해외 프로젝트나 외화 기반 디지털자산이 국내 결제·송금 시장을 잠식하고, 외환·통화·데이터·핀테크·콘텐츠 산업 전체의 주도권이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스테이블코인의 잠재적 위험보다, 제도 부재로 인한 ‘시간 손실’이 훨씬 큰 리스크라는 주장이다.
금융권 “규제가 없어서 더 무섭다… 골든타임 지나간다”
토론회에 참석한 금융·핀테크 업계 관계자들은, 디지털자산 시장이 이미 글로벌 차원에서 재편되고 있는데 한국만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미국·일본 등 주요국은 스테이블코인과 디지털자산을 차세대 금융 인프라로 보고 제도와 인프라를 서둘러 정비하고 있는데 국내 금융회사는 ‘무엇을 해도 될지, 어디까지가 금지인지’가 불명확해 사업 모델을 설계하기조차 어렵다는 것이다.
업계의 공통된 이야기는 이렇다. “규제가 강하더라도, 기준이 분명하면 계획이라도 세우지만 지금처럼 규제 공백 상태가 이어지면 결국 한국 시장만 고립된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미 산업이 ‘디지털 금융 갈라파고스’로 가고 있다는 표현까지 써가며 위기의식을 드러냈다.
금가분리 완화 신호에 금융회사 ‘눈치만’… 제도 설계는 아직 안개 속
패널들은 오랫동안 유지돼 온 금융-산업 분리(금가분리) 원칙도 디지털자산 시대에 맞게 손질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당국 내부에서도 “금가분리를 절대선으로만 볼 수 없다”는 메시지가 조금씩 나오고 있지만, 어떤 방식으로 규제를 손볼지에 대해서는 뚜렷한 그림이 나오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은행·증권사·카드사 등 전통 금융회사는 “참여하라면서도 동시에 책임은 우리에게만 돌릴 수 있는 구조가 될까” 우려하며, 선뜻 움직이기 어려운 상황이다.
금융위원회 “전담 조직 강화·파생상품·법인 계좌 등 내부 논의 중”
금융위원회는 가상자산 관련 전담 부서를 새로 만들고 역할을 키우면서, 디지털자산 정책을 총괄하는 컨트롤 타워 기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인력 충원을 포함해 조직 개편도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내부적으로 논의되는 주요 과제로는 디지털자산 파생상품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 기업·기관이 거래에 참여할 수 있도록 법인 계좌를 어떻게 열어줄 것인지, 금융회사의 직접 참여 범위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 등이 거론되고 있다. 금융위 측은 “금융회사가 일정 수준 이상 산업에 들어와야 시장 불확실성이 줄어든다”는 점에는 공감하면서도, 투자자 보호와 건전성 관리를 위한 안전장치를 병행해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커스터디 인프라, 디지털자산 시장 설계의 ‘핵심 축’
당국 관계자들은 디지털자산 시장의 제도화를 논의할 때 **커스터디(수탁)**가 가장 중요한 인프라라고 입을 모았다. 기관투자가와 대형 금융회사가 마음 놓고 디지털자산 상품을 다루려면, 자산이 안전하게 보관되고, 거래·결제 과정이 투명하게 기록되며 사고 발생 시 책임 소재가 분명한 수탁 시스템이 먼저 구축돼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은행이나 증권사를 중심으로 한 전통 금융권 모델, 암호화폐 특화 수탁사 모델, 또는 이 둘을 혼합한 형태 등 여러 시나리오를 두고 어느 구조가 한국 시장에 적합할지 검토하고 있다. 일부에서 거론되는 ‘은행 지분 51% 컨소시엄 구조’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확정된 정책 방향은 아니다”라는 선에서 선을 그은 상황이다.
과기정통부 “블록체인 산업 로드맵 준비 중”… 기술·정책 동시 추진 예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블록체인과 디지털자산을 중심으로 한 분산원장 기술 생태계에 관심을 높이고 있다. 과기정통부는 곧 블록체인 기반 서비스·플랫폼 육성 방향과 규제 정비 과제를 담은 정책 로드맵을 공개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금융위원회가 추진하는 디지털자산기본법과 연계해, 기술 개발 지원, 시범 사업, 데이터 인프라 확충 등을 패키지로 지원하는 방안을 담을 가능성이 크다.
“디지털자산기본법, 이번 회기에 윤곽 잡아야” 전망
정치권과 산업계에서는 디지털자산기본법의 윤곽이 이번 회기 안에 잡히지 못하면, 한국 디지털 금융의 경쟁력이 한 단계 더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국회는 정부가 약속한 시한까지 법안을 제출하면 곧바로 심사 일정에 착수하겠다는 입장이다. 반대로 법안 발의가 또 미뤄질 경우, 정부를 향한 책임론이 더욱 거세질 가능성이 크다.
스테이블코인, 토큰화 증권, 디지털자산 파생상품 등 새로운 시장이 글로벌 표준 쟁탈전으로 번지는 가운데, 한국이 이번 입법 과정에서 골든타임을 확보할 수 있을지가 향후 정책·산업 전반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