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추가 적립금 의무에 술렁이는 원화 스테이블코인 시장
페이지 정보
본문

“수익모델 사실상 봉쇄… 대형 금융사만 남는다”
국회에서 추진 중인 더불어민주당의 원화 스테이블코인(가칭 ‘원스코’) 규제 법안을 두고 국내 디지털자산 업계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핵심 쟁점은 기존 100% 지급준비금과는 별도로 발행 잔액의 3% 이상을 추가 적립하도록 한 조항이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발행사에게 남을 이익을 사실상 모두 걷어가는 구조”라며 “결국 자본 여력이 큰 대형사만 버틸 수 있는 법안”이라고 비판한다.
100% 준비금에 더해 ‘3% 별도 적립’… “수익이 통째로 사라진다”
현재 논의 중인 법안 초안에 따르면,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는 발행액 100%에 해당하는 국채·예금 등 안전자산을 지급준비자산으로 예치해야 하고, 여기에 더해 발행 잔액의 최소 3%를 별도의 적립금으로 추가 쌓아야 한다.
스테이블코인 비즈니스 구조를 감안하면 이 3%가 치명적이라는 게 업계의 공통된 주장이다. 일반적으로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100원을 발행하면 100원을 채권·예금 등으로 묶어두고, 여기서 발생하는 연 2~3% 수준의 이자 수익으로 인건비·시스템 비용을 충당하고, 일부를 영업이익으로 가져가는 구조다.
문제는 이자 수익 규모(예: 연 3%)와 **별도 적립금 비율(3% 이상)**이 사실상 맞붙는다는 점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자로 번 돈을 고스란히 적립금으로 다시 쌓으라는 의미”라며 “남는 것이 없다면 신규 진입은 물론 기존 사업자도 철수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한다.
자본력 있는 대형 기술·금융사만 웃는 구조?
업계에서는 이번 원화 스테이블코인 법안이 스타트업·핀테크·중소은행에는 ‘진입 장벽’, 반대로 **대형 IT 기업·시중은행에는 ‘시장 선점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막대한 초기 손실을 감수하고도 장기 전략을 펼칠 수 있는 빅테크·대형 시중은행은 적립금 3% 부담을 감내하며 시장 점유율을 확보할 여지가 있다.
반면 자본 여력이 부족한 중소형 사업자는 규제 준수를 위해 필요한 자본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그림의 떡”이 될 것이란 전망이다. 한 핀테크 업계 관계자는 “준비자산 100% 의무만으로도 리스크 관리 강도는 상당히 높다”며 “여기에 추가 적립까지 요구하면 사실상 ‘대형사 이외에는 하지 말라’는 신호로 읽힐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GENIUS Act·MiCA와 비교… “국제 기준보다도 더 센 규제” 지적
김병기 의원안은 미국과 유럽의 스테이블코인 규제 체계와 비교해도 상대적으로 강도가 높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GENIUS Act는 지급 스테이블코인에 대해 엄격한 1:1 준비자산 의무와 허가제를 도입했지만, 별도 적립금 비율을 일률적으로 못박지는 않고, ‘중요 스테이블코인’ 등에 대해 차등적인 추가 요건을 둘 수 있도록 규정하는 방식이다.
미국 와이오밍주 등 일부 지역에서는 2% 수준의 추가 적립 비율이 논의되거나 도입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EU의 MiCA 규제는 자산참조토큰, 전자화폐형 토큰 등 주요 스테이블코인에 대해 약 3.3% 수준의 추가 자본·적립 요구를 두고 있는데, 이 때문에 유럽산 스테이블코인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국내 학계와 업계에서는 “MiCA 역시 ‘육성’보다는 ‘위험 차단’에 초점을 둔 규제 모델인데, 이를 거의 그대로 가져와 한국형 원화 스테이블코인에 적용하는 것은 산업 성장성 관점에서 과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적립비율 100% 넘으면 확산 막힌다”… 학계도 우려
전문가들은 지급준비자산 100% 의무 자체는 소비자 보호와 신뢰 확보 측면에서 필요하지만, 이를 넘어선 수준의 추가 적립을 법으로 강제하는 것은 시장 확산을 정면으로 가로막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 경제학자는 다음과 같이 진단한다. “발행사에 일정 수준의 자본금·건전성 요건을 요구하는 것은 타당하지만, 준비자산과 별도 적립금을 합쳐 발행액의 100%를 넘게 만드는 구조는 발행사의 비즈니스 모델을 유지하기 어렵게 만든다.” “추가 적립금을 채우기 위해 발행사가 무리한 고위험 투자를 시도하거나, 반대로 아예 사업을 접는 선택을 할 수도 있다”며 금융안정 취지와 반대로 시장 리스크를 키울 수 있다고 경고한다.
또 다른 교수는 “세계적으로 스테이블코인 준비자산을 **100% 초과 수준으로 의무화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며 “한국이 예외적으로 높은 비율을 도입할 경우, 원화 스테이블코인 생태계 자체가 출범 초기부터 위축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준비자산 운용·구조에서 혁신 여지 열어둬야”
전문가들은 준비자산의 종류와 운용 방식에서 더 많은 유연성을 부여하는 방향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예를 들어, 일부는 한국은행 예치금으로 두되, 예치비율에 따라 수수료·이자율을 차등 적용하거나, 영국 사례처럼 일정 비율(예: 40%)은 무이자지만 고안정성 예금으로 유지하도록 하는 방안,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토큰화 국채(Tokenized KTB), 해외 스테이블코인과의 스왑, 일부 예금 강제 등 다양한 구조를 조합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학계에서는 “준비자산 적립 비율을 ‘103%로 획일화’하기보다는, 자산 구성, 운용 전략, 위험분산 방식 등에서 여러 실험과 혁신이 가능하도록 설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개별 3% 적립 대신 ‘공동 안전판’ 모델도 검토 필요
강형구 한양대 교수 등 일부 학자들은, 모든 원스코 발행자가 각자 3%를 쌓는 구조 대신 공동 안전기금 성격의 기구를 만드는 방안을 제안한다. 스코틀랜드의 과거 자유은행제도처럼, 발행사들이 컨소시엄 형태의 **‘커런시 보드(Currency Board)’**를 구성해 여유 자금을 한곳에 모으고, 문제가 생긴 스테이블코인에 선택적으로 자금을 투입해 일종의 민간 예금자보호제도를 운영하는 방식이다.
이 경우 각사가 3%씩 따로 쌓는 것보다 공동 기금 운용을 통해 효율적으로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고, 중소형 발행사도 규모의 경제를 공유할 수 있어 “대형사 쏠림” 현상을 완화할 수 있다는 논리다.
소규모·중요도 따라 ‘차등 규제’ 도입 필요성
해외 금융당국은 이미 스테이블코인의 규모·중요도에 따른 차등 규제에 무게를 두는 추세다. 영국의 경우 결제·금융시스템 리스크가 크지 않은 소규모 스테이블코인에는 규제 강도를 상대적으로 낮게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해 왔고, 미국 GENIUS Act 역시 대형·중요 스테이블코인과 일반 소규모 발행사 사이에 규제 격차를 두는 구조를 담고 있다.
국내 전문가들은 “원스코 역시 규모와 이용자 수, 결제 비중 등을 기준으로 대형·시스템 중요 스테이블코인과 실험적·소규모 프로젝트를 구분해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한다.
“규제 일변도에서 ‘육성 vs. 안전’ 균형 논의로 전환해야”
이번 민주당 원화 스테이블코인 법안 논란은 한국이 원화 기반 디지털자산 생태계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소비자·금융안정 보호를 위한 규제 강화는 필수적이지만, 국내 디지털자산·핀테크 산업 경쟁력을 고려한 ‘육성’ 관점 역시 동시에 담겨야 한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이야말로 한국이 글로벌 디지털 금융에서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핵심 인프라가 될 수 있다”며 “과도한 적립금 의무로 시장을 싹 막아버리기보다는, 위험은 관리하면서도 혁신과 경쟁이 살아남을 수 있는 설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3% 추가 적립금’ 논쟁이 단순한 규제 강약 논쟁을 넘어, 한국형 디지털화폐·디파이(DeFi) 전략의 방향성을 재정립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